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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piece] 환상의 박제와 실존의 황혼: <선셋 대로>가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

infodon44 2026. 2. 1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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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꿈의 공장은 언제나 당신의 젊음을 원료로 삼고, 그 대가로 찰나의 영광을 선사한 뒤 차갑게 등을 돌립니다. 빌리 와일더의 1950년 작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는 단순히 몰락한 여배우의 광기를 다룬 치정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근원적인 파괴성과, 인간의 자아가 '이미지'라는 박제된 틀에 갇혔을 때 벌어지는 존재론적 붕괴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잔혹한 보고서입니다.

 

1.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 스펙터클의 소비와 주체의 소외된 나르시시즘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가장 정교한 신화인 동시에, 인간의 육체와 이미지를 상품화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냉혹한 시장입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이 거울 속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한다고 했지요. 노마 데스몬드는 바로 그 덫에 걸린 전형적인 주인공입니다. 스타 시스템은 그녀에게 '불멸의 젊음'을 부여했고, 그녀는 그것과 실제의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거울(대중의 시선)이 다른 대상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자아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시스템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펙터클을 원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스타는 가차 없이 버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폭력은 배우를 한 명의 주권적 인간이 아닌, 소비 가능한 기호품으로 전락시킵니다. 노마가 저택 안을 자신의 과거 사진으로 도배한 행위는 파편화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 기제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SNS라는 거울에 중독되어 실재의 삶보다 투영된 이미지에 집착하는 대중의 병리적 현상과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결국 그녀의 광기는 시스템이 설계한 '거울의 방'에서 길을 잃은 주체의 필연적인 몰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잡지사 편집실에서 제가 했던 일은 결국 '이미지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마감 직전까지 모델의 얼굴 주름 하나, 모공 하나를 지우기 위해 리터칭에 매달리며 제가 느꼈던 것은 경외감이 아니라 일종의 권태로운 냉소였죠. 우리가 보정해 낸 그 완벽한 이미지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음을 알면서도, 그 사진이 인쇄되어 나갔을 때 독자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기묘한 승리감을 맛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사진을 받아 든 배우가 거울 속 자신의 실물보다 우리가 만든 '가짜 나'를 더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잡지의 판매량을 결정짓는 '상품적 가치'로만 생각하던 우리의 시선이 바로 노마 데스몬드를 광기로 밀어 넣은 그 공범의 시선이 아니었을까요?

 

2. Sunset Boulevard의 공간 사회학: 기술 복제 시대의 아우라 붕괴와 누아르적 미학

Sunset Boulevard라는 공간은 발터 벤야민이 주창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론을 가장 영화적으로 증명하는 무대인 동시에,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문법이 정점에 달한 공간입니다.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는 복제 불가능한 일회적 '아우라'를 지닌 신성한 존재였으나, 유성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등장은 그 아우라를 대량 생산의 영역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노마 데스몬드의 저택은 박물관처럼 박제된 아우라의 잔해들이 모인 공간이며, 바깥세상의 할리우드는 아우라 따위는 상관없는 효율적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공장입니다. 빌리 와일더는 거대한 저택의 구석구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노마가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없는 '어둠의 포로'임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유성 영화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듯, 노마의 광기가 폭발할 때마다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로 그녀의 신경쇠약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기술적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고통을 가중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장치입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로, 종이 잡지에서 웹진으로 매체가 전환되던 시기, 편집실은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예전에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인화지를 기다리고, 붉은 펜으로 자를 대어가며 글자 하나하나의 무게를 고민하던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죠.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복제와 붙여넣기'의 속도전이었습니다. 마감 날 새벽, 인쇄기가 미친 듯이 돌아가며 똑같은 얼굴을 수만 장씩 찍어낼 때, 저는 묘한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밤을 새워 공들여 만든 그 '아우라'가 순식간에 종이 뭉치로 복제되어 나가는 소리는, 마치 노마 데스몬드가 자신의 과거를 박제하기 위해 돌리던 영사기 소리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렸거든요. 화려한 화보 속 스타들은 웃고 있지만, 그 뒷면에서 기계처럼 이미지를 깎아내던 우리 편집자들의 얼굴 위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쩌면 아름다움을 대량으로 '복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3. 자기 반영적 서사가 보여주는 환상의 박제: 30년 전 그날의 클로즈업

영화 속에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아내는 자기 반영적 서사는 <선셋 대로>가 지닌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관음증적 속성'을 고발합니다. 빌리 와일더는 실제 전설적 배우와 감독들을 기용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는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 아니라 '자아를 갉아먹는 기생충'임을 폭로하며, 우리가 스크린이라는 창을 통해 누군가의 파멸을 즐기는 '잠재적 공범'임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노마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그 '아름다운 환상'이 때로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을 지키기 위해, 그 이후의 모든 서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노마가 무성 영화 속에 머물고자 했던 심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현실의 비루함이 침투하기 전, 가장 완벽한 순간에 셔터를 내려버리는 것. 그것은 누군가에게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연인'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이자, 동시에 실존하는 지금의 자신을 부정해야만 하는 비극적 역설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30년 전,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던 한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제 이상형 그 자체였고,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우상이 되었죠. 하지만 저는 그와의 관계를 더 이상 잇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그 단 한 번으로 이미 '완성'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억 속에서 저는 영원히 늙지 않고, 빛이 바래지도 않는, 가장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으로 박제되길 원했던 것이죠. 잡지사 편집실에서 수많은 스타의 사진을 리터칭 하며 찰나의 미(美)를 영원한 것으로 둔갑시키던 그 시절, 제 무의식은 노마 데스몬드의 그것과 닿아 있었습니다. 노마가 현실을 거부하고 무성 영화 속의 완벽한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두려 했던 것처럼, 저 역시 현실의 비루함과 세월의 풍파가 우리의 관계를 훼손하기 전에 스스로 셔터를 내려버린 셈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저 역시 누군가에게만큼은 영원히 '만인의 우상'과 같은 존재로 남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노마의 비극적인 클로즈업을 보며 자문해 봅니다. 환상 속에 박제된 그 '아름다운 나'를 지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진짜 삶을 얼마나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를 말입니다. 이제는 박제된 필름 밖으로 걸어 나와, 주름지고 변해버린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깨닫지만, 여전히 그 완벽했던 하루를 놓아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미해결 과제 효과(자이가르닉 효과)’**의 힘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관계를 완성하지 않고 가장 뜨거운 정점에서 멈춰 세움으로써, 저는 그의 기억 속에 결코 해결되지 않는, 그래서 평생을 두고 꺼내 봐야 하는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남기로 한 것이죠. 덕분에 저는 그의 마음속에서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지 않은 채, 30년 전 그날의 눈부신 모습 그대로 영원히 늙지 않는 연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현실의 노마 데스몬드는 무너져 내렸지만, 저만의 선셋 대로에서는 제가 스스로 내린 셔터 덕분에 그날의 클로즈업이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마치며

<선셋 대로>의 엔딩, 정신이 붕괴된 노마 데스몬드가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며 "미스터 데밀, 전 이제 클로즈업 준비가 됐어요"라고 속삭일 때, 영화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것은 한 배우의 비극적 종말인 동시에, 환상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는 현대 문명에 대한 조롱이죠.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이라는 카메라 앞에서 각자의 클로즈업을 준비하며 삽니다. 때로는 30년 전의 그 아름다운 기억이 오늘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 환상이 오늘의 나를 삼키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카메라는 오직 껍데기만을 사랑할 뿐이지만, 당신은 당신의 주름진 현재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자, 이제 당신의 쇼는 끝났습니다. 조명이 꺼진 뒤, 당신은 거울 속의 진짜 자신과 눈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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