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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틱 리포트] <이브의 모든 것>: 권력의 전이와 욕망의 전위, 그 비극적 순환의 해부학

infodon44 2026. 2. 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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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위스키 잔 속의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차갑고, 무대 조명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욕망이 충돌하는 곳. 1950년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의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은 단순한 할리우드 내부 고발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권력의 속성을 파헤친 잔인하고도 우아한 해부학 교과서입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 뒤 남겨진 공허함과,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영혼을 갉아먹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과거 제가 잡지사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목격했던 한 여인의 ‘천일천하’를 떠올립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의 뒤틀린 욕망과 만났을 때 어떤 비극이 탄생하는지, 이제 3가지 심층적인 관점을 통해 그 웅장하고도 씁쓸한 서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공간의 정치학과 푸코적 권력 담론: '대기실'과 '편집실'의 심리적 영토 확장

영화 속 연극계의 권력 암투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주창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일상의 질서가 멈추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분출되는 장소) '**와 '미세 권력(Micro-physics of Power)(사소한 언행과 관계 설정을 통해 서서히 주도권을 장악하는 힘)' 담론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마고 채닝(베티 데이비스)의 대기실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닌, 그녀의 카리스마가 생산되고 유지되는 '성역'입니다. 하지만 이브 해링턴(앤 바스터)은 이 폐쇄적 공간에 '보호'와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잠입하여 공간의 지배술을 펼칩니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며, 이브는 마고의 비서, 남편, 비평가라는 권력의 연결망을 하나씩 차단하거나 자신의 쪽으로 끌어으로써 마고를 고립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이 **'판옵티콘(Panopticon)

'**적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수를 통제하는 시선의 권력 구조) 시선입니다. 이브는 무대 뒤편에서 마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그녀의 결점과 불안을 포착합니다. 정보가 권력이 되는 이 지점에서, 이브는 무대 중앙의 마고보다 더 강력한 '보이지 않는 감시자'로 작동합니다. 제가 잡지사에 근무하던 시절, 잡무를 위해 투입된 신입이 보여준 행보는 이브의 그것과 소름 끼칠 정도로 흡사했습니다. 잡지사 편집실은 고도의 지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전쟁터와 같습니다. 그녀는 처음엔 이 분위기에 압도된 듯 보였으나, 곧 편집장의 호의를 발판 삼아 공간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편집장에게 내뱉은 **"기자들이 글을 쓰는 동안 청소나 하는 제 자신이 하찮게 느껴져요"**라는 고백은, 사실상 편집실이라는 권력의 장(Field)에 공식적인 지분을 요구하는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영화 속 이브가 마고의 의상을 대신 입어보며 아우라를 훔쳤듯, 그녀 역시 편집실의 작은 업무들을 하나씩 가져가며 기자들의 '심리적 영토'를 침범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업무 욕심이 아니라, 타인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고도의 '공간 지배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그 당돌한 요구 앞에서 제가 느꼈던 불쾌함 속에는 내 밥그릇을 지키려는 비겁한 기득권자의 공포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2. 기호학적 언어와 벤야민적 위기: '아우라'의 복제 가능성과 위계의 붕괴

이 작품은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위트 있는 독설과 속사포 같은 대사 전개가 특징인 장르) '**의 대화 기법을 비극적 서사에 활용한 혁신적인 사례입니다. 언어학자 그라이스(H.P. Grice)의 **'협력 원리'**를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이면(Subtext)에는 날카로운 면도날을 품고 있습니다. 마고의 "안전벨트 꽉 매세요"라는 대사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자신의 독보적인 지위인 '아우라(Aura)'가 붕괴될 것임을 직감한 실존적 비명입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 복제 시대에 예술 작품의 고유한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마고는 '복제 불가능한 오리지널'이고, 이브는 그녀를 완벽하게 모방하여 대체하는 '복제물'입니다. 이브는 마고의 연기 스타일, 말투, 심지어는 인간관계까지 완벽하게 복제하여 대중에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관객은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가짜, 즉 **'시뮬라크르(Simulacre)(원본의 아우라를 압도하여 스스로 실재가 된 복제 이미지) '**의 탄생을 목격하게 됩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했듯,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파생실재가 원본을 구축(驅逐)하는 과정이 이브의 액탈 과정입니다. 잡지사는 '언어'가 곧 상품이자 권력인 공간입니다. 그녀는 이 생리를 본능적으로 간파했습니다. 편집실 업무를 맡게 된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보다는 '기자라는 직함'이 주는 허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는 영화 속 이브가 셰익스피어적 수사로 대중을 현혹하듯, 교묘한 이간질과 거짓 정보를 흘려 분위기를 망가뜨렸습니다. 동료들의 사소한 실수나 농담을 권위적인 편집장에게 전달할 때, 그녀는 '함축(Implicature)'적으로 전달하여 맥락을 뒤틀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언어적 유희로만 쌓아 올린 그녀의 '천일천하'는 결국 밑천을 드러냈습니다. 편집실이라는 무대는 결국 글의 깊이를 요구하는 곳이었고, 모방으로만 채워진 그녀의 문장은 사표 수리라는 결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쫓겨날 때 느꼈던 저의 묘한 안도감, 그것 역시 나 또한 이브와 다를 바 없이 추악한 생존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는 서글픈 증거였습니다. 자격 없는 자가 자리에 앉았을 때 무대가 붕괴되는 것을 보며 안도하는 것 또한,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3. 나르시시즘적 질투와 라캉적 거울 단계: 욕망의 무한 복제와 소외의 악순환

정신분석학적으로 **<이브의 모든 것>**은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거울 단계(Mirror Stage)' 이론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며 완전한 자아를 상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인(Misrecognition)된 착각입니다. 이브는 마고라는 '완벽한 타자'를 자신의 거울로 삼아,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할수록, 이브의 본래 자아를 상실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수천 개의 거울 앞에 선 피비의 모습은 이 비극의 끝없는 대물림을 의미합니다. 권력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것이며, 이브가 마고를 밀어냈듯 또 다른 이브(피비)가 그녀를 밀어낼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불교의 윤회나 니체의 **'영겁 회귀(Eternal Recurrence)'**적 공포와도 닿아 있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마주하는 것은 안식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복제물입니다. 그녀가 떠난 뒤, 저는 거울 앞에 선 이브를 보듯 제 자신을 깊이 응시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 역시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잡지사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내가 몰랐던 지식과 언어를 구사하는 타자들을 보았을 때, 나라고 질투와 허영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잡지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보아온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한 인간에게, 눈앞의 화려한 타자들은 곧 닿고 싶은 '거울 속의 이상'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괴물이 되었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이브'가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공통적인 본능이자 근원적인 고독의 발현입니다. 그녀를 비난하던 시선이 저 자신을 향할 때, 저도 비로소 끝 간 곳 없는 인간 욕망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마치며

막이 내려도 사라지지 않는 냉혹한 진실의 울림 공연은 끝났고 커튼은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이브'들이 극장 뒷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사실을요. **<이브의 모든 것>**은 단순히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고독, 그리고 그 고독을 타인의 시선과 권력으로 메우려 할 때 발생하는 비극을 가장 우아하게 그려낸 철학적 성찰입니다. 진정한 삶은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가 아니라, 마고 채닝이 마지막에 깨달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소박한 일상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이브의 이야기를 원하고, 우리는 그 비극적인 순환을 지켜보며 남몰래 안전벨트를 조여 매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고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독약 같은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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