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개》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권총보다 걷는 사람이었다. 무라카미는 권총을 잃어버린 뒤 계속 움직인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단서를 따라가고,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이상하게도 아주 고된 일처럼 보인다. 사건이 커지는 이유는 권총 하나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권총 자체보다 그 권총이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만들어내는 변화가 더 중요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분실물이었던 것이 범죄의 도구가 되고, 결국 무라카미를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계까지 끌고 간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범인을 찾아가는 형사의 이야기라기보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이 사람을 얼마나 먼 곳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보게 됐다.
1. 무라카미는 왜 그렇게 오래 걸어야 했을까
영화 초반의 무라카미를 보고 있으면 사건보다 먼저 날씨가 느껴진다. 뜨거운 여름날의 도쿄에서 그는 계속 사람을 찾아다닌다. 땀에 젖고 지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닌다. 요즘 영화라면 이런 수사 과정은 빠르게 편집해서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들개》에서는 무라카미가 실제로 꽤 오래 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건의 속도보다 그가 겪는 피로감이 먼저 전달된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배경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라카미는 자신이 권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건을 쫓으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자신의 실수가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범죄를 조사하고 있지만, 그 사건의 출발점에는 자신의 부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계속 걸으면서 점점 개인적인 실수에서 멀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내 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을 것이다. 하지만 총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무라카미는 자신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총은 더 이상 무라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무라카미의 걷는 모습이 이 영화의 속도를 결정한다고 느꼈다. 특별히 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그는 계속 이동한다.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영화의 더위도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단순히 ‘1949년 도쿄는 더웠다’는 정보가 아니라, 무라카미가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답답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2. 권총은 주인을 잃으면서 다른 물건이 된다
이 영화에서 권총은 조금 특이한 물건이다. 처음에는 무라카미의 것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뒤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사람이 권총을 이용하면서 물건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부분이 나는 꽤 흥미로웠다. 무라카미에게 그 권총은 경찰관으로서 사용하는 장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같은 물건인데도 그것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더구나 권총은 단순히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지는 소품이 아니다. 무라카미가 총을 잃어버린 사실이 사건의 출발점이 되고, 그 총이 실제 범죄에 사용되면서 이야기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물건도 사람을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라카미가 총을 잃어버린 순간에는 작은 실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 총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무라카미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자신의 권총을 통해 이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영화에서 권총은 단순한 사건의 증거가 아니라 무라카미와 범죄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무라카미는 원래 그 세계에 들어가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물건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결국 그곳까지 가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이 《들개》를 단순한 경찰 수사 영화와 조금 다르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총을 가지고 있는가’만이 아니다. 그 총이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계속 따라붙는다.
3. 진흙탕에서는 경찰과 범죄자의 구분이 흐려진다
영화 후반부의 무라카미와 유사의 싸움은 앞부분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때까지 무라카미는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고, 단서를 좇는 형사였다. 그런데 유사와 맞붙는 순간에는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진다. 두 사람은 진흙 속에서 뒤엉킨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단순히 긴장감 있는 결투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다시 보면 두 사람의 모습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 둘 다 흙투성이가 되고, 옷도 더러워지고, 서로를 붙잡고 땅바닥을 구른다.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을 구별해 주던 깔끔한 모습이 사라진다. 물론 둘의 위치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는 경찰이고 유사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유사의 행동을 무라카미와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런데 영화는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누가 더 깨끗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두 사람 모두 진흙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장면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유사를 갑자기 좋은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무라카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두 사람이 같은 땅바닥에서 몸을 부딪치게 한다. 그래서 앞에서 계속 보아온 경찰과 범죄자라는 구분이 잠시 약해진다. 특히 무라카미가 처음 영화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의 권총을 잃어버린 일 때문에 불안해하던 젊은 형사였는데, 마지막에는 범인을 직접 붙잡기 위해 진흙 속에서 싸우고 있다. 그 변화가 말보다 몸으로 표현된 장면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4. 사건이 끝난 뒤에도 무라카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들개》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처음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른다. 처음에는 무라카미가 자신의 권총을 잃어버렸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보면 아주 개인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그 총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범죄에 사용되었으며, 결국 무라카미는 그 총을 따라가면서 여러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렇다면 사건이 끝난 뒤 무라카미에게 남은 것은 단순히 되찾은 권총 하나였을까. 나는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화에서 무라카미는 처음과 마지막에 같은 사람이지만, 관객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꽤 달라져 있다. 처음의 그는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그는 범죄가 벌어지는 세계를 직접 보고, 유사와 몸을 부딪치고,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를 끝까지 따라간 사람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권총을 찾는 일은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라카미는 권총을 따라가면서 자신이 몰랐던 도시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그것이 《들개》에서 가장 오래 남는 부분이었다. 특히 마지막까지 생각나는 것은 화려한 장면이 아니다. 더운 거리에서 무라카미가 계속 걸어가던 모습이다. 처음에는 권총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저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려고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걸음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가 찾고 있던 것은 권총 한 자루였지만, 그 권총을 따라가면서 결국 자신이 살고 있던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그래서 《들개》를 보고 난 뒤에도 사건의 결말보다 그 길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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