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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1948), 나는 안토니오라면 자전거를 훔쳤을 것 같다

infodon44 2026. 2. 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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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전거 도둑(1948)의 비극적 서사를 상징하는 길가에 세워진 낡은 자전거 이미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이동수단일 뿐인 이 낡은 자전거가, 1948년 로마의 한 가장에게는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보고 나서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자전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니면서도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안토니오의 모습이었다. 안토니오는 혼자 로마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들 브루노가 곁에 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전거를 찾기 위해 시장과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에게 묻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많아질수록 안토니오의 외로움은 더 커져 보인다. 나는 이 영화를 가난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만 보지 않고, **도움을 받을 사람이 주변에 아무리 많아도 결국 자신의 문제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보게 되었다.

 

### 1.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지만, 아무도 안토니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잃어버린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전거를 찾는 것이다. 아내 마리아와 함께 자전거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 있던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맡겼고, 그 대가로 얻은 돈으로 자전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동안 어렵게 마련한 기회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안토니오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로마의 거리를 돌아다닌다. 사람은 많고, 자전거도 많다. 시장에도 사람들이 있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안토니오의 사정을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은 없다. 나는 이 장면들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더 외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자전거 하나였다. 그것만 찾으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문제 하나가 하루 종일 그를 도시 전체를 헤매게 만든다.

 

### 2. 브루노는 곁에 있지만, 안토니오의 외로움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안토니오에게는 브루노가 계속 따라다닌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로마의 거리를 걷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내가 특히 마음이 쓰였던 부분이다. 브루노는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절박한지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아버지의 자전거를 찾아줄 수도 없고, 아버지가 일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식당에서 잠시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조금 평범한 부자처럼 보인다. 브루노는 음식을 먹고, 안토니오도 잠시 현실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자전거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것과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루노는 분명 안토니오의 곁에 있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짊어진 문제는 결국 안토니오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가난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3. 마지막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안토니오가 가장 혼자가 된다

결국 안토니오는 다른 자전거를 훔치려 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안토니오를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만약 내가 안토니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신 있게 “나는 절대 훔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도 훔쳤을 것 같다. 더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아마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의 자전거를 훔치려고 했을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자전거를 훔치는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처럼 내가 가진 것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일을 하지 못하면 가족이 먹고살기 힘들고, 이미 가진 것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면 그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안토니오를 둘러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더 씁쓸했다. 처음에는 그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전거 한 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려다가 그 사람들과 마주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안토니오는 자신이 찾던 도둑을 쫓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붙잡힌 도둑이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영화의 제목인 《자전거 도둑》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객도 안토니오와 함께 자전거를 훔쳐간 한 명의 도둑을 찾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안토니오 자신도 그 ‘도둑’이라는 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영화가 안토니오를 쉽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왜 그런 행동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하루 종일 따라가게 했기 때문에, 나는 마지막에 그를 바라보면서 판단과 연민 사이에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 마치며

《자전거 도둑》을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안토니오보다, 사람들 속을 계속 돌아다니면서도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안토니오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아들 브루노도 곁에 있었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외로운 모습이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난 뒤 내가 정말 오래 생각한 것은 안토니오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정말 그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했을까. 아직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내가 기억한 것은 자전거보다 브루노와 안토니오가 함께 걸어가던 모습이었다. 안토니오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자기 곁을 걷는 작은 손 하나는 놓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기 전에, 나도 그 사람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정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묻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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