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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번치(1969)〉: 샘 페킨파의 폭력 미학과 슬로우 모션 기법

infodon44 2026. 10. 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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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 번치를 연상시키는 말을 탄 서부 남자
황량한 서부 풍경 속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남자의 모습

 

 

 

 

〈와일드 번치〉를 보고 나서 이상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총격의 소리보다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총을 맞은 사람이 한 번 쓰러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이고 느린 화면으로 또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보여주는지 조금 의아했다. 그냥 빠르게 지나가도 될 장면을 굳이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페킨파가 관심을 둔 것은 총을 잘 쏘는 사람의 멋이 아니라, 총을 쏜 뒤에 벌어지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와일드 번치〉를 ‘폭력적인 서부영화’라는 말보다 **폭력을 바라보게 만드는 방식이 이상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보게 됐다.

 

## 1. 왜 사람은 총을 맞은 뒤에도 계속 화면에 남아 있을까

**슬로우 모션 기법을 보고 있으면 〈와일드 번치〉의 총격전에서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영화 초반 은행 강도 장면이 그렇다. 파이크 일당은 마을에 들어와 은행을 털지만, 그곳에는 이미 함정이 준비되어 있다. 현금가방을 열어보면 돈 대신 철제 조각들이 들어 있고, 지붕과 거리 곳곳에서는 무장한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곧 총격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총을 쏘는 파이크의 모습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고, 말들이 놀라 달아나며, 군중이 이리저리 도망친다. 페킨파는 이 순간들을 빠르게 연결하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죽음을 느리게 보여준다. 한 번 보고 지나칠 수 있었던 움직임을 다시 붙잡는 것이다. 실제 제작에서도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서로 다른 속도로 돌려 이런 장면을 촬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이 방식이 꽤 묘하다고 느꼈다. 총격전이라면 보통 누가 누구를 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누가 죽었는가’보다 ‘사람이 죽는 모습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이 장면이 차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편집은 굉장히 빠르고 화면도 계속 바뀐다. 빠르게 움직이다가 느려지고, 다시 빨라진다. 그래서 관객은 편안하게 총격을 구경하기 어렵다. 나는 이것이 〈와일드 번치〉의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페킨파는 폭력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 번에 보여주고 지나가지도 않았다. **잠깐이면 끝날 죽음을 영화의 시간 속에서는 길게 남겨놓았다.** 이 때문에 총격전이 끝나도 방금 본 장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 2. 파이크는 강해서 살아남는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파이크 비숍을 보고 있으면 ‘시대가 바뀌었다’는 말보다 ‘그런데도 왜 계속 예전 방식대로 행동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파이크와 동료들은 총과 말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선 세계에는 철도가 있고, 조직적인 추격대가 움직이며, 예전처럼 몇 명의 총잡이가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들의 시대가 이미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오프닝에서 강도단과 추격대가 충돌하는 모습 역시 전통적인 서부극의 깔끔한 대결과는 거리가 멀다. 민간인까지 뒤섞인 난장판이다. 그런데 파이크는 계속 앞으로 간다. 나는 이 점이 오히려 마지막보다 더 마음에 걸렸다. 파이크가 특별히 무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하던 방식밖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일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에게 거칠게 말하고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파이크가 “한 사람의 편에 서면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식의 신념을 말하는 것도 그래서 중요해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파이크가 말하는 원칙과 그의 행동 사이의 모순을 여러 장면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들을 단순한 악당으로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들의 살인을 좋게 볼 수도 없다. 그냥 **망해가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영화의 총격 장면도 조금 달라진다. 총을 잘 쏘는 것이 이들에게는 여전히 힘이지만, 그 힘이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들이 가진 것이 총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 3. 마지막에 파이크가 선택한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마지막 아쿠아 베르데 총격전에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수많은 총알이 아니라 파이크 일당이 굳이 그곳으로 돌아가는 선택이었다.** 그들은 멕시코 장군 마파체가 지배하는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 목적은 돈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붙잡힌 엔젤을 데려오기 위해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완전히 달라진다. 파이크와 더치, 라일 고치 형제는 기관총을 들고 마파체의 병사들을 향해 공격한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총성이 이어지고, 화면은 짧은 장면들을 빠르게 잘라 붙인다. 그러다가 다시 느린 화면이 끼어든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데만 32일이 걸렸고 300명이 넘는 엑스트라와 500마리가 넘는 동물이 동원됐을 정도로 영화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마지막까지 싸우는 멋진 총잡이들’의 장면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제 이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총을 잘 쏜다. 실제로 엄청난 수의 병사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그 능력은 그들의 결말을 바꾸지 못한다. 파이크가 죽고, 더치와 고치 형제도 살아남지 못한다. 수많은 총성이 지나간 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 없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앞부분의 슬로우 모션이 다시 생각났다. 영화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들더니, 마지막에는 파이크 일당의 죽음도 똑같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총을 쏘는 쪽과 총을 맞는 쪽이 결국 같은 화면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와일드 번치〉의 폭력이 단순히 잔인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이 총격을 구경하도록 만들었다가, 마지막에는 그 총격 속에 있던 사람들도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돌려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마지막에도 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끝까지 바꿀 수 없었다.

 

### 마치며

〈와일드 번치〉를 보고 나서 나는 ‘폭력을 아름답게 찍은 영화’라는 말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화면은 강렬하고, 슬로우 모션과 빠른 편집은 총격전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 장면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페킨파는 죽는 사람을 빨리 치워버리지 않았다.** 잠깐이면 끝날 일을 느리게 만들고,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여주고, 관객이 그 순간을 계속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이크 일당 역시 그 화면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내가 〈와일드 번치〉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얼마나 잔인한 총격전인가’가 아니다. **사람이 죽는 장면을 왜 이렇게 오래 보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 장면을 오래 본 뒤에는 처음과 똑같은 총격전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총성이 먼저 들렸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그 총성이 지나간 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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