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죽음 이후의 동반자: 전통 상여 장식에 담긴 염원과 미학

infodon44 2025. 11. 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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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우리는 산 자들의 세계에서 망자(亡者)의 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인이 탈 마지막 가마인 '상여(喪輿)'는 단순히 운구 도구를 넘어, 남아 있는 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응축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민속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전통 상여 장식은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며, 슬픔과 애도 속에서도 삶의 순환과 길상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깊은 지혜와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1. 상여를 따라 저승 가는 길, 길고 복잡한 노정의 '환상 세계'

상여는 죽은 이가 생을 마감하고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가마입니다. 이 상여를 꾸미는 장식물들은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망자가 미지의 저승길을 순탄하고 외롭지 않게 갈 수 있도록 돕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불안감이 상여의 장식 하나하나에 투영되어 하나의 거대한 '환상 세계'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특히 상여 본체는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고, 4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워 그 위로 포장을 쳐서 햇빛을 가렸으며, 상여 뚜껑에는 연꽃, 봉황 등 상서로운 문양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용두, 일월오악도, 구름 문양 등은 천상세계로의 상승과 저승길의 평안을 기원하는 상징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깨달음과 환생의 의미를 담고 있어, 망자가 고통 없는 극락왕생을 하기를 바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도교적 이상향인 신선세계의 문양은 망자가 속세를 떠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염원하는 것이었죠. 이러한 상여 장식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구성은, 우리 조상들이 죽음을 현실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저승 역시 또 다른 삶의 연속으로 받아들였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저승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상여는 그 길 위에서 망자에게 **안온하고 화려한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망자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리는 '신분증'이자 '통행증'**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망자가 외롭거나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저승길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망자의 여정을 위로하고 응원하려 했던, 상여 장식은 죽음과 영생에 대한 우리 민족의 깊은 성찰과 치유의 미학을 담아낸 것입니다.

 

2.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을 달래고, 신분 상승의 욕망을 드러내다: 상여꾼과 상여놀이

상여는 죽은 자를 위한 도구였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을 달래고, 때로는 현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며 민중의 해학을 담아내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상여의 화려한 장식과 그것을 메고 가는 상여꾼들의 의례는 단순한 운구를 넘어, 남아 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결속을 가져다주는 복합적인 사회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상여놀이'**는 죽음의 슬픔을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민속놀이였습니다. 출상하기 전날, 상여꾼들은 빈 상여를 메고 풍악을 울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민속놀이를 펼쳤습니다. 이들은 빈 상여에 놀이 잘하는 사람을 태우고 우는 시늉, 상제 시늉 등을 하며 죽음의 엄숙함을 잠시 잊게 만드는 연극을 했습니다. 황해도 지역에서는 이러한 상여놀이를 '생여돋음(상여돋음)'이라 불렀는데, 해가 져서 밤이 이슥해지면 풍물을 치며 빈 상여를 메고 집집을 돌며 애환을 달랬습니다. 이러한 상여놀이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극도의 슬픔과 공포를 현실의 해학과 풍자로 극복하고, 공동체 전체가 망자와 유족을 위로하며 함께 애도하는 독특한 문화였습니다. 더불어, 상여의 장식물은 때로 유교적 의례 활동을 통해 가문의 '양반 신분으로의 상승'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표상물(表象物)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신분 이동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고인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신분 상승의 꿈이나 가문의 위세를 상여의 화려함으로 대신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죠. 이는 죽음이라는 엄숙한 순간마저도 현세의 사회적 욕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상여놀이와 화려한 장식은 이처럼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슬픔, 공동체의 유대감, 그리고 사회적 욕망이라는 복합적인 심리가 얽혀 나타나는 독특한 민속 현상이었습니다.

 

3. 죽음과 영생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지전(紙錢)'과 '꼭두'의 이중성

상여는 망자의 저승길을 배웅하는 도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장식물들은 종종 죽음과 영생, 슬픔과 희망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과 아이러니를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전(紙錢)'과 '꼭두'입니다. 죽은 자를 보내는 길에 사용된 **지전(紙錢)**은 단순히 돈을 상징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는 망자가 저승에서 사용할 돈을 미리 보내주는 것이자, 저승의 관문에서 지전을 뿌려 악귀나 잡귀를 쫓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지전의 원래 기능은 길잡이였다고 하는데, '귀신들이 좋아하는 돈을 뿌려 귀신의 관심을 뺏어서 망자를 유인해 간다'는 무서운 이야기로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돈을 주고 저승사자를 매수하거나, 저승의 관원에게 뇌물을 주어 망자의 심판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하는 현실적인 욕망도 지전에는 담겨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순리 앞에서도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위해 현세의 방식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것이죠. 한편,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인 꼭두는 망자를 저승까지 수행하고 위로하며 잡귀를 쫓는 역할을 했습니다. 꼭두는 '피안으로 이끄는 길벗'이자 '어둠 속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하며, 망자의 외롭고 두려운 저승길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동반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꼭두들은 망자를 떠나보낸 후에는 함께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망자를 위로하고 지켜주던 존재가 망자와 함께 소멸한다는 아이러니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한계와 비극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살아있는 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진 꼭두는 망자를 위한 위로를 넘어, 죽음과 이별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복합적인 감정, 즉 슬픔과 동시에 언젠가 자신들도 망자처럼 사라질 존재라는 허무함까지 담아내는 존재였습니다. 상여 장식물은 이처럼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인간의 복잡하고도 슬픈 미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며

전통 상여 장식은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위한 마지막 가마를 넘어, 이승의 정이 저승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던 우리 조상들의 지극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담긴 민속의 보고였습니다. 연꽃과 봉황으로 채워진 화려한 장식은 미지의 저승길을 밝히는 위로이자 축복이었고, 해학적인 상여놀이는 죽음의 슬픔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지혜였습니다. 또한 지전과 꼭두에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순리 앞에서조차 사랑하는 이를 놓지 않으려 했던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허무함, 그리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합니다. 상여 장식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적인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깊은 철학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경계를 성찰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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