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1955)를 보고 나서 이상하게 오래 남은 것은 수용소의 참혹한 기록영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풀밭과 건물이었다. 화면 속 풍경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풀이 자라고 있고, 건물은 낡아 있으며, 주변은 조용하다. 그런데 《밤과 안개》는 그 평범한 장소 위에 과거의 모습을 겹쳐 놓는다. 그러면 같은 장소가 갑자기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불편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장소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수용소는 조용해지고, 풀은 다시 자란다. 장소는 스스로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그곳에서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