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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 8

〈벤허〉(1959), 전차 경주가 끝난 뒤 영화의 속도가 달라지는 순간

〈벤허〉(1959)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전차 경주부터 떠올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장면이 단순히 규모가 커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과 말, 전차가 한꺼번에 움직이니 당연히 눈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단순한 규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차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과 경기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계속 교차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차만 가까이 붙잡고 있지 않는다. 때로는 거대한 경기장 안에서 여러 대의 전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 순간에는 카메라가 그 위험한 움직임 가까이 들어간다. 나는 이 차이가 〈벤허〉의 전차 경주를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보이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네마 클래식 2026.04.1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된 순간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으라면 비행기가 로저 손힐을 들판에서 공격하는 장면일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이 장면을 긴장감 넘치는 추격 장면으로만 기억했다. 그런데 다시 보면서 이상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비행기보다 **그 비행기가 등장하는 장소**였다. 로저가 서 있는 곳은 어두운 골목도, 폐쇄된 방도 아니다. 햇빛이 비치는 넓은 들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히려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비행기가 나타나는 순간 그 장소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히치콕이 **특별히 무서운 장소를 만들지 않고도 평범한 공간을 위협적인 장소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이었다로저는 한적한 ..

시네마 클래식 2026.04.16

〈지지〉(1958), 숙녀가 되어야 했던 지지보다 어른들이 더 철없어 보였다

파리의 풍경과 화려한 의상, 노래와 춤부터 눈에 들어온다. 영화의 분위기도 가볍고 밝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지가 예절을 배우고 사랑을 만나면서 숙녀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조금 이상하게 남은 것은 지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어른들이었다.** 지지는 식사 예절을 제대로 지켜야 하고, 옷을 갖춰 입어야 하며, 남자를 대할 때도 적절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 어른들은 그것을 지지에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지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지지가 어떤 여자로 보이는지**에 가까워 보인다. 이렇게 보고 나니 영화의 제목인 ‘지지’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숙녀가..

시네마 클래식 2026.04.14

〈악의 손길〉(1958), 퀸랜은 범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자기 판단에 맞췄다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자동차 폭발 장면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자동차 안에 폭탄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먼저 알려주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자동차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은 긴장감을 만든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갈수록 이상하게 신경 쓰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경찰 행크 퀸랜이었다. 퀸랜이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증거를 조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이상했던 것은 **그가 한번 범인을 정한 뒤에는 실제로 벌어진 일을 보는 대신, 자신의 판단에 맞춰 사건을 만들어간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수사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로는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너무 확신하면, 진실을 찾는..

시네마 클래식 2026.04.12

《현기증》(1958), 스코티가 사랑한 것은 사람이었을까, 기억이었을까

영화 《현기증》(1958)을 다시 생각하면서 가장 불편하게 남은 장면은 의외로 주디가 메들린의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회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다시 올린 주디가 초록빛을 등지고 나타나자 스코티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메들린을 되찾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이 아름다운 재회의 장면이라기보다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주디는 눈앞에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인데, 스코티가 바라보는 것은 주디가 아니다. 그가 보고 싶었던 모습에 가까워진 주디다. 이 장면을 중심에 놓고 다시 영화를 보니, 스코티의 집착은 마지막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영화 초반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 주디가 메들린이 되는 순간, 사람 하나가 사라진다주디는 처음부터 메들린이 아니었다. 그녀는 개빈 엘스터의 계획에 따..

시네마 클래식 2026.04.08

《콰이강의 다리》(1957), 니컬슨은 왜 자신이 만든 다리를 지키려 했을까

기차가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니컬슨은 갑자기 그곳에 설치된 폭약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다리를 폭파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1957)의 마지막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니컬슨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 다리는 일본군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것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막으려고 했을까. 더 이상한 것은 영화 초반의 니컬슨이다. 그는 일본군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장교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처벌까지 감수했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는 일본군이 사용할 다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니컬슨은 대체 언제부터 다리를 지키는 사람이 된 것일까...

시네마 클래식 2026.04.05

영화 〈제7의 봉인〉(1957), 왜 이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가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1957)을 보고 나면 보통 죽음과 체스를 두는 기사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도 그랬다. 검은 옷을 입은 죽음과 체스를 두는 장면은 너무 강해서 다른 장면이 그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영화에서 안토니우스 블로크가 그렇게 집요하게 찾는 것은 사실 ‘죽음을 피하는 방법’만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 신에게 답을 요구한다. 신은 존재하는가, 내가 왜 여기 있는가, 내가 믿어 온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베리만은 그 질문에 관객이 기대할 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블로크가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관객에게 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는 것*..

시네마 클래식 2026.04.02

산딸기(1957), 나는 이삭 보리를 처음부터 좋아할 수 없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1957)에서 이상했던 것은 이삭 보리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이었다. 보통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 이삭의 과거는 그렇게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아름다운 순간이 나타났다가도 곧 불편한 장면으로 바뀌고, 꿈인지 기억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이 현재의 여행 사이로 끼어든다. 처음에는 나도 이삭을 외로운 노인으로 보았다. 명예학위를 받으러 가는 유명한 교수지만 가족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혼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이삭은 외로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번에는 **“이삭이 무엇을 깨닫는가”보다 “여행하는..

시네마 클래식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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